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 (문단 편집) == 내용 == 결국 브라질군에 의해 쫓겨나 연합주로 망명했던 독립군의 지도자였던 후안 안토니오 라바예하를 중심으로 한 33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연합주의 지원으로 1825년 다시 시스플라티나로 들어와 브라질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연합주에 가입하자 이에 분노한 브라질이 연합주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연합주 해군에 비해 압도적인 규모를 가졌던 브라질 해군이 라플라타 강을 봉쇄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무역을 차단하자 연합주 해군은 라플라타 강을 봉쇄한 브라질 해군을 상대로 돌파를 시도하고 라플라타 강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파타고니아]] 일대에 주둔시켜놓은 [[사략선]]을 대거 [[대서양]]으로 보내 브라질 상선을 대상으로 사략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연합주 해군은 준칼 해전에서 브라질 해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파타고니아로 침공해온 브라질 함대를 물리치는 등 얼마간의 성공을 거두었으나 1828년 몬테산티아고 해전에서 브라질 해군이 쪽수를 앞세워 연합주 해군을 박살내자 결국 제해권은 브라질이 쥐게 되었다. 육지에서는 연합주군이 라플라타 강을 건너 시스플라티나를 점령하고 브라질 영내로 진격하자 황제 페드루 1세가 연합주의 공세에 반격하기 위해 브라질 전역에서 병사들을 모집하여 직접 친정에 나섰는데 전쟁에 끌려가기 싫었던 국민들이 전국적으로 징병 거부 폭동을 일으키면서 페드루 1세는 어쩔 수 없이 친정 계획도 포기하고 얼마 없는 군대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진격하도록 명령했으나 1827년 이투자잉고 전투에서 패배하여 공세가 좌절되었다. 하지만 연합주 역시 이 전투의 여파로 공세를 이어갈 여력을 상실하고 브라질 영내에서 철수했다. 결국 양측 모두 서로에게 일격은 주지못한 채 전황은 지지부진해졌고 브라질 국내에서는 돈만 잔뜩 들고 인기도 없는 전쟁을 당장 중단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하라는 여론이 커져갔다. 연합주 역시 브라질에 공세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부에노스아이레스 항이 브라질 해군한테 봉쇄당하고 재정수입이 대폭 줄어들면서 재정부담이 커졌다. 결국 라플라타 강이 봉쇄당하면서 연합주와의 무역로가 막히게 된 영국이 양측에 빨리 전쟁을 끝내라고 압박하면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협상이 시작되었고 1828년 8월 27일 영국과 프랑스의 중재 하에 양국은 시스플라티나의 독립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조약을 체결하면서 전쟁은 끝나게 되었다. 그리고 동년 [[10월 4일]] 몬테비데오에서 우루과이 동방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반다오리엔탈 일대를 둘러싼 3국의 갈등은 마침내 끝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